Yeah Feel So Good!: 11월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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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7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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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4일 일요일

서세원 서정희 서동주 그리고 서동천

서세원의 몰락

서세원은 2001년 6월 설립한 회사 서세원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영화 <조폭마누라> 및 소속 연예인들의 홍보를 위해 방송사 PD 등에게 홍보비 명목의 돈을 뿌리고, 
지난해 초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해 3억7천만원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자 당시 절정의 인기를 달리고 있던 "서세원쇼" 를 펑크내고 2002년 7월 홍콩을 경유하여 2002년부터 미국에서 살고있던 가족의 집으로 튀었으며 함께 2003년 4월 귀국하자마자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치료를 위해서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 한양대 병원에 입원했다.

2002년 9월 
여성동아에서 서정희와 서동주에 대한 기사나왔다.
위의 알려진 것과 달리 2002년 6월 서세원은 베이징에 있었다고 한다.

베이징이냐 홍콩이냐 혼돈이 있는 것을 보면 2001년에 나돌았던 연예계 뒷루머인
한편 현재 해외 도피 증인 개그맨 서세원 씨 역시 국내 조폭들은 물론 중국 최대의 조폭 단제 삼합회 사람들과도 친분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삼합희 식구들이 서울에 오면 서세원 씨가 직접 나서서 접대할 정도로 극진히 모셨다 함.  
서 씨는 본인이 제작한 영화 ’조폭 마누라'에 삼합회 투자 자금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처럼 유명 연예인들과 조폭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케이스가 비일비재하다 함. 
이부분이 주목할만하다.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_donga/200209/topic03.html
2002년 8월 16일 여성동아는 서세원의 자택이었던 청담동 빌라에서 초인종을 수십번 눌러서 불러내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귀가하고 있는 당시 19세의 나이로 일찌감치 웨슬리 대학 유학을 떠났는데 방학이라 한국에 온 딸 서동주에게 들러붙어 심문을 시작했다.

“엄마가 집 전화를 핸드폰으로 착신해 놓아서 그래요. 지금 집에는 강아지랑 일하는 아주머니 밖에 없어요. 제 말을 못 믿으시겠으면 따라오세요.”

라고 하여 같이 가봤으나 진짜 그래서 서동주를 더 심문하려다 울거같아서 여자의 무기인가 그냥 서정희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다고 한다.

마침 전화가 되었으며 서정희는 
"요즘 집과 기도원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고 나는 정확한 상황을 모른다. 모든 일은 남편이 귀국해 다 밝힐 것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
고 말했다. 지곤조기
사실 이때부터 신앙과 종교에 얽히지 않았나 싶다.

마카오 도박설에 대해서 "억울하다" 하면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고. 자신이 경솔하게 내뱉은 말들로 인해 혹시라도 남편 서세원에게 해가 가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듯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범법자로 판결

서정희는 베이징에 있는 서세원에게 "대중이 당신을 원하지 않으니 제발 연예인을 그만두라" 말했다고 한다. 


2003년 10월 8일 
검찰은 “높은 형량이 예상되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세원은 변호사를 3명이나 고용하는 등 1년여동안의 긴 투쟁을 하여 구속적부심 청구까지 하였다.

하지만 석방시 증거인멸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각! 
이라는 법의 철퇴를 맞았다.

이와중에 유사 범죄로 같이 기소되었던 이수만은 석방

기소되기 전까지 변호사와 가족들과 면회의 시간을 보내고..
아내 서정희는 매일 남편 면회를 다니고, 기도로 시간을 보낸다. 자차가 없기 때문에 친척 한명이 차로 데려다주는 형편이었다.

이런 혼돈의 카오스 중에서도 두 자녀는 미국에서 공부중.

가족이 살던 청담동 빌라는 매각되었다.

2004년 5월 25일 
스포츠조선을 통해서 도마 안중근을 제작하고 있다고 언플을 놓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8일 
스포츠조선
도마 안중근이 26일 평양 장충성당에서 첫 시사회를 갖는다고 보도하였다.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하는 100여명의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와 50여명의 영화제작 스태프, 북한 영화관계자들이 함께 참석하여 시사회를 연다고 하였다.

2004년 8월
서세원은 다른 연예인들의 해외 도박설에 대해서 같이 묻어서 의심을 받았으나 서세원은 그런거 없ㅋ성 으로 일침했다.
이때부터 부인이 독실한 기독교신자라는 것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본인이 관련있음을 간접적으로 밝혀왔다.
방송복귀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노컷뉴스에서 안중근 선생님이 2000만 동포를 위해라고 말씀하신게 있어서 예상관객수는 2000만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고 드립을 날렸다.

2004년 9월 10일
도마 안중근이 개봉했고 15만명 정도의 관객동원으로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불쌍한 유오성

2004년 11월 9일 
서세원은 1심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결국 2년 집행유예가 되었다는 얘기, 법인인 서세원프로덕션의 경우는 납세의 의무를 잘지킨 포상... 으로 벌금은 5000만원으로 감형해주었다.

하지만 대법원으로 항소심을 올렸고

2005년 닛시엔터테인먼트에 대표를 맡았다

2005년 4월 7일
아내인 서정희는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하여 그간 겪은 고초를 풀어놨는데

무슨 염치로 나오냐 VS 서세원이 나쁜놈이지 아내가 죄인이냐?
이걸로 시청자게시판이 폭발했다고 한다.
이미 바닥까지 내려갈대로 내려간 여론은 서세원 끼워넣을려고 밑작업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게 대부분이었다.

딸인 서동주가 호소문을 좋은 아침 시청자게시판에 작성하여 화제가 되었다가 여론이 더 안좋아지자 바로 삭제하였다.

전문
신문에서 많은 분들이 어머니의 방송 출연여부를 두고 이야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에는 맞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들도 많다
 3년 동안 저희 가족은 배운 것도 깨달은 것도 많았다. 잘못한 점은 뉘우쳤고 반성도 많이 하였다 길을 걸으면 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고 집앞에는 기자분들이 와서 기다리는 일들이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더욱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가족 모두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너무 나쁘게만 이야기하지 말고 좋게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유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대학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학교를 다닐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도 안다.너희는 꼭 졸업하고 외국에서 돈을 벌어 한국으로 다 들고 와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선 무조건 일등을 해서 한국사람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공부하는 만큼 누구보다 더 열심히 생활하여 꼭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딸 서동주는 미국 MIT대 수학과로 편입해 재학중이었으며 아들 서동천은 일본 와세다 대학교 1학년생이었다.

2005년 4월말
서세원은 방송관심없고 영화제작하느라 바쁘다고 하였다.

2005년 7월 5일
2002년이후 자신은 수면제를 복용하며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으며
법률대리인 이덕우 변호사가 2002년 검찰에 고문을 받아 서세원에 관한 허위진술을 하였다는 매니저 하모씨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고발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2006년
닛시엔터테인먼트그룹은 박효신과 전속계약 하였으나
서로 음반제작과 계약 관련 소송싸움하다가 합의보고 화해하기로 했다.

2006년 10월
프로필상에는 여기까지 서세원이 대표이사를 맡았다고 되어있다.

2007년 3월
닛시엔터테인먼트그룹은 음반 유통사 T사로 부터 박효신 계약해지로 붕떠버린 음반제작에 대한 선급금과 위약금 30억원을 달라고 하는 통보를
"회사가 어렵다 좀 봐주세요"
라는 쉴드를 쳤고 보증금으로 걸려있던 8억 7천만원만 서세원이 보증하고 주기로 했으나 그것마저 줄 수 없게 어려워져서 질질 끌다보니 T사로부터 보증인인 서세원 본인이 직접 소송을 당했다.

2007년 8월
서세원의 아들 서동천 (예명=미로) 는
SBS 이적의 음악공간에서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s 를 아주그냥 확그냥 막그냥 연주하고 망쳐 불러놓아서 여론이 안좋아지자 사과문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미로밴드의 미로입니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 이적의 음악 공간을 촬영하고 왔었는데 그게 어제 방송이 되었더군요.
 Mama 1곡만 방송에 나간다고 한 데다가 촬영 당시에는 관객 분들이 바보 같은 모습을 비교적 재미있게 봐 주시고 웃어 넘겨주시는 분위기라서 걱정을 전혀 안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2시에 잠들어서 못 봤는데 밴드 애들이 난리 났다고 아침에 전화가 와서 일어나보니 제가 큰 물의(?)를 일으킨 것 같네요.
 지금 정말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들의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랬는데 그게 아니고 완전히 방송을 장난으로 알고 깽판 부린 양아치들로 비춰지고 있네요.
 먼저 사건의 경위를 처음부터 알려드리자면 작가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방송은 타이틀 곡 Mama만 나갈 거라고 하시고 다른 한 곡은 관객 분들이 듣고 호응 할 수 있는 외국 팝송으로 해달라고 주문을 하셨습니다.
 저희 밴드가 사실은 하드코어에 가까운 스크리모, 이모코어 밴드라서 작가님께서 주문하신 곡들은 솔직히 하기가 싫었습니다.
 아빠가 아니면 불러주지도 않았을 곳인데 저희가 너무 철이 없었습니다.
 작가님 말씀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 깊이 생각을 못했네요.
 저는 오로지 단 한번뿐인 기회인데 저희들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처음 인터뷰하고 서세원 생쇼에 나갔을 때 방송이라고 긴장해서 평소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너무너무 아쉬웠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리더인 제가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바보 같고 순수한 평소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선택하자고 제시했죠.
 그래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Nirvana의 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유명한 곳이니 순수 OK를 해주셨고요.
 제가 부를 수 없는 음역대의 노래였지만 그 때 심정으로는 사람들이 제가 워낙 못하니까 재미있게 보시고 노래 못해도 저렇게 자신 있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구나 하고 귀엽게 봐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저의 큰 실수였네요. 많은 분들께서 그 방송을 나오기 위해 실력을 갈고 닦고 피눈물을 흘리는데 저희는 아빠 덕분에 쉽게 나와서 장난처럼 하고 들어갔으니 욕 먹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 너무 짧았네요. 저는 단 한번 도 제가 가수나 연예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면 항상 말했다시피 노래도 못하고 잘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쓴 곡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자유롭게 음악과 함께 사는 게 꿈인 소박한 청년입니다.
 저를 불러주지도 않겠지만 버라이티 쇼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는 나갈 생각도 없고요.
 그래서 잘난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저희 밴드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비춰진 것 같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방송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고 바지 벗는 다던지 침을 뱉는 거친 행위가 아니었기에 큰 무리가 없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네요.
 작가님과 방송PD님 그리고 방송을 보고 어이를 상실하셨던 모든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가 잘못한 일이기 때문에 비판과 비평은 언제든지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미로밴드.com에 오셔서 Critic에 남겨주세요. 

2007년 12월 14일
자금 횡령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또 받았다.
수십억 원을 횡령하고 이중 15억 원을 개인 세금 납부와 주식 인수, 영화제작 등에 사용했다는 혐의다.

2008년 8월 15일
아버지의 영향이 있는지 이 날짜에 발매를...
집안상황이 어떻든 간에
서울 예원중학교 피아노 전공
사립여대 웨슬리 대학에서 미술 전공
MIT 편입해서 순수수학
세계 1위 경영대학원 와튼 스쿨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공부한
그야말로 우울한 환경을 넘어 엄친딸의 스펙을 갖춘 서세원의 딸 서동주가
유학생활의 이야기를 담은 동주이야기 를 발매했다.
안읽어봐서 내용이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그럭저럭 평타는 친다고 한다.

아버지가 범법자로 몰리던 시절때 자살시도를 했다고 하는데
범법자로 몰리는게 아니라 이제 범법자 맞다.

인성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외모가 엄마 닮아서 예쁘게 자란거 같았는데...

2010년 1월 23일
개그맨 서세원의 딸 서동주는 27세로 미국에서 6살연상의 재미교포와 결혼하였다.
재미교포 사업가와 서동주는 중학교 재학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술전공으로 웨슬리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MIT에편입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재원이다. 신랑은 미국하버드대를 졸업한 인재로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과정을 수료한뒤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온갖 성형카페에서는 서동주의 성형 전후 사진이 돌면서
역시 성형을 해야지 결혼을 잘한다며 열폭이 일어났다.


과연

2010년 7월
아내 서정희씨가 운영하는 쇼핑몰 ‘쉬이즈엣홈’에서는 평범해 보이는 회색 쿠션이 서정희의 소품이라는 이유만으로 44만원이라는 고가로 판매되고 있었으며, 대나무 소쿠리는 33만원, 비누받침은 20만 9000원, 레깅스는 50만원 등에 팔리는 것으로 연예인 이름 가져다 붙이면 이렇게 되냐 천하의 나쁜놈들앙 생각이 있냐 없냐며 욕을 바가지로 먹는 와중에 침묵으로 일관하다 2달여간의 운영 후 폐쇄하였다.

그 와중에 입금자명은 딸인 서동주로 되어있어 이런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하는게 증여세와 상속세를 부과를 피하고 소득세로 대신함으로써 서정희씨가 구매하여 재신을 증식시키는 편법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아니 그러면 왜 광고를 했어 조용히 했지 겸사겸사 오픈했나

2012년 3월
서세원과 서정희씨는 또 좋은아침에 출연하여
교회활동과 적자교회, 집의 인테리어등을 소개했다.

여론은 또 들고일어나서
"적자교회라는데 대궐같은 집에 인테리어까지 장난이 아니다"
라며 폭풍비난을 하여 시청자게시판이 또 폭발하였다.

2013년 3월
아내 서정희씨가 한국라이프스타일디자인협회가 개최하는 '2013년 라이프스타일디자인 세미나' 강연에 나섰다.

2013년 6월 
동아일보의 파생상품 채널A에서 서세원 남희석의 여러가지 연구소라는 떼토크 예능에 대해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애초 4회 편성이고 파일럿수준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인거 보니 걍 묻혀버린듯.

2013년 8월
딸인 서동주씨 소유의 고급 오피스텔이 법원경매 물건으로 나왔다.

등기부등본상 서씨 딸이 지난 2011년 3월 매입했으나
김모씨에게 임대한 뒤 전세권을 설정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권자인 김씨는 해당 전세권을 근거로 지난 5월 임의경매를 신청했다.

유영수 서울부동산칼리지 원장은 “2011년 당시 설정된 전세권 설정액은 7억5000만원이었지만, 김씨가 실제로 청구한 금액은 4억1000만원인 것으로 볼 때 김씨가 전세금 전액을 회수하기 위해 경매를 신청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고 한다...

강남세무서 앞으로 근저당권도 걸려있는데 서정희씨가 4억 3천만원의 채무자라서 납세담보로 걸려있는 것이라고 한다

8월 8일 아들인 서동천 군이 와세다 대학 동창생과 결혼했다.

서동천 군의 학력이 성균관대 영문학과 라는 설도 있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부전공: 사회학) 이라는 것도 있다.
최종학력은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철학석사)
병역은 공익근무

딸 서동주 최종학력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이과대학원 수학과 이학석사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박사

그리고 서세원 서정희는 지금 이런일을 하고 있다.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 POWER CJ COMPANY GROUP POWER !!!

[출처] http://blog.daum.net/ham0706/11480242

삼성(신라호텔)은 빵집 철수, 사촌 재벌 CJ그룹는? 뚜레주르로 골목 잠식..케이블TV-CGV-CJ E&amp;M, 미디어․연예계 장악
한국 서민산업-미디어산업 장악한 CJ그룹의 명과 암

삼성(신라호텔)은 빵집 철수, 사촌 재벌 CJ는?

빠리바게트 성공하자 뚜레주르로 골목 잠식..케이블TV-CGV-CJ E&amp;M, 미디어․연예계 장악


지난 26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큰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서민들 생업과 밀접한 제빵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다른 재벌들도 잇달아 ‘제과점 사업’을 그만 두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도 ‘우리는 다르다’며 꿋꿋하게 버티는 재벌이 있다. 바로 CJ그룹이다.
‘재벌 빵집’ 논란 비껴간 CJ그룹 계열 ‘뚜레주르’
CJ그룹 계열사인 CJ푸드빌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제과점 이름은 ‘뚜레주르’다.
현재 빠리바게트와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하고 있다. 두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합치면 시장 점유율이 70%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뚜레주르’와 ‘빠리바게트’가 같은 재벌 것 아니냐고 묻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빠리바게트’는 SPC그룹의 주력 사업이다. SPC그룹은 1945년 설립한 상미당이 모태다.
상미당은 나중에 이름을 삼립식품으로 바꿨다. 우리나라 최고의 제빵기업이다.
외환위기 후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SPC그룹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SPC그룹이 1986년부터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만들어 동네 제과점과 손을 잡은 게 바로 ‘빠리바게트’다.
‘빠리바게트’는 대기업의 노하우와 동네 제과점 업주의 협력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2010년 말 기준으로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전국 매장 수는 직영점과 제휴점을 포함해 3,000개 가까이 된다.
‘제빵왕 김탁구’의 모델도 SPC그룹이라고 한다.
반면 CJ푸드빌의 ‘뚜레주르’는 ‘빠리바게트’의 성공 이후인 1996년에 만든 브랜드다.
CJ그룹의 자본력과 유통망 등을 십분 활용해 ‘빠리바게트’를 따라 잡으려 노력 중이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1,400여 개 매장을 갖고 있다. 매출액은 3,300억 원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철수하기로 한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의 ‘아티제’는 어떨까.
2011년 기준으로 매장은 27곳, 매출은 241억 원에 불과하다. 매장 대부분이 ‘동네 골목’이 아니라 도심의 대형
오피스 빌딩에 있다.
CJ푸드빌의 ‘뚜레주르’ 대리점을 창업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3억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과 정치권이 말하는 ‘영세 동네 상인’ 죽이는 ‘재벌빵집’이 ‘동네빵집’ 창업하는 데 몇 억 원이 들게 만든 ‘재벌’일까,
아니면 대형빌딩에 제과점 차린 재벌일까.

서울 N타워, 청와대 사랑채, 공항과 대학병원도…‘생활밀착형 문어발 CJ’
‘빵집’ 외에 다른 사업들도 보자. 2009년 말 기준으로 CJ계열사는 54개라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은 각종 미디어와 유통, ‘랜드마크’가 되는 건물에서의 식당 운영이다.
CJ그룹의 모태는 삼성그룹의 ‘뿌리’ 중 하나인 ‘제일제당’이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후 CJ그룹은 주력사업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음식료 산업 관계사로는 설탕, 조미료 등을 만드는 ‘CJ제일제당’과 ‘프레시안’이라는 브랜드로 냉동식품을 만드는 ‘CJ프레시웨이’, ‘뚜레주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 뿐이다.
CJ그룹이 ‘식품’과 같은 계열로 묶은 ‘CJ엠디원’은 CJ그룹 내 서비스직과 머천다이징 사업 담당자들을 교육하는 곳이고,
‘CJ엔시티’는 ‘복합상업공간 전문운영 업체’라고 한다.
‘CJ엔시티’는 2005년 12월 ‘YTN’과 계약을 맺은 후 서울 N타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청와대의 일반인 관광공간인 ‘사랑채’ 식당, 인천국제공항, 김포공항, 김해공항, 서울대 병원, 이대목동병원, 일산 킨텍스 등에서 ‘푸드코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다. CJ의 영향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미디어 그룹’이다.
CJ E&amp;M을 중심으로 한 CJ의 미디어 파워는 언론사들조차 꼼짝 못한다는 평이 많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투자․배급․수입을 모두 할 수 있는 기업으로는 CJ와 롯데를 꼽는다.
그 중 美드림웍스와 손잡고 만들었던 ‘CJ엔터테인먼트 &amp; 미디어(이하 CJ E&amp;M)’의 파워는 막강하다.
최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4; 고스트 프로토콜’이나 ‘아바타’ ‘쿵푸팬더 2’ 등 ‘초대박’이었던 영화 대부분이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들어왔다. 2004년부터는 국내 공연계에도 투자해 ‘캣츠’ ‘맘마미아’ ‘지킬앤하이드’ 등을 성공시켰다.

2011년 말 개봉해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미션임파서블4: 고스트 프로토콜'의 포스터. 이 영화도 CJ그룹이 국내 배급을 맡았다.
▲2011년 말 개봉해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미션임파서블4: 고스트 프로토콜'의 포스터.
이 영화도 CJ그룹이 국내 배급을 맡았다.

‘CJ E&amp;M’이 국내 영화계에 대한 투자금액도 적지 않다.
‘공동경비구역 JSA’ ‘집으로’ ‘살인의 추억’ ‘너는 내 운명’ ‘타짜’ ‘그놈 목소리’ ‘11번가의 기적’ ‘화려한 휴가’ 등이
‘CJ E&amp;M’이 투자한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CJ그룹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CGV’라는 복합영화관(멀티플렉스)를 통해 영화를 배급한다.
‘CJ CGV’는 전국에 40여 개의 ‘CGV’를 운영, 영화관 점유율 40%(1위)를 차지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보려면 둘 중 한 명은 CJ그룹의 ‘CGV’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러 갈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CJ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다. 케이블 채널에서도 부동의 1위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케이블 채널 시청 가구 수는 약 1,250만 가구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 2002만 가구의 절반을 넘는다.
가정에서 시청하는 채널 중 ch CGV, OCN, OCN시리즈, 슈퍼액션, 온스타일, 올리브TV, tvN, XTM, 투니버스, Mnet 등이 ‘CJ E&amp;M’이 가진 채널이다.
사람들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에도 ‘CJ E&amp;M’의 손길이 뻗어 있다.
‘뉴포커’ ‘대박맞고’ ‘사천성’ 같은 웹보드 게임에서부터 ‘마구마구’ ‘솔저오브포춘’ ‘스페셜포스2’ ‘서든어택’ ‘그랜드체이스’ ‘SD건담 캡슐파이터’ ‘슈퍼스타K 온라인’ ‘엠스타’ 등이 ‘CJ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언론도 ‘CJ그룹이 중소 IT기업(또는 영세 영화사)들을 위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인들은 ‘CJ그룹의 연예인 파워 때문’이라고 말한다.

‘포털 인기검색어’ 점령하는 ‘연예인’, 뒤에 설마 ‘CJ’가?
2001년부터 우리나라 미디어는 ‘포털’이 주도하고 있다.
뉴스는 물론 최신 유행도 포털이 주도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들은 이 같은 점을 활용해 ‘인기 검색어’라는 컨셉을 내놨다.
이후 마케터들은 ‘인기 검색어’ 상위권에 한 번 들어가는 게 소원이 됐다.
최근에는 그 ‘인기 검색어’ 대부분을 연예인이 차지하고 있다. 연예인 소식은 뉴스 콘텐츠에서도 가장 많은 조회수를 차지한다.
이런 연예계에서 ‘CJ E&amp;M’의 파워는 막강하다.
‘CJ E&amp;M’은 산하에 ‘연예기획사’는 없지만 그와 '관계'가 깊은 곳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 중 한 곳이 ‘Cjes엔터테인먼트(이하 씨제스)’다.
지금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말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CJ E&amp;M의 전신 중 하나인 엠넷미디어와
 ‘씨제스’는 깊은 관계였다.
‘씨제스’의 대표인 백창주 씨는 2004년까지 ‘아이스타씨네마’를 운영했다.
‘아이스타씨네마’는 연예인 권상우 씨의 소속사였다.
2004년 5월 연예계 ‘거물’이라는 음반기획자 김광수 GM기획 대표가 ‘포이보스’라는 코스닥 기업을 인수,
우회 상장한 다음 2005년 3월에는 ‘아이스타씨네마’에 투자해 최대 주주가 된다.
2006년 7월에는 CJ그룹이 ‘포이보스’에 500억 원을 투자, 최대 주주가 되면서 함께 ‘엠넷미디어’를 설립한다.

2008년 '엠넷미디어'가 내건 이벤트 '오디션'의 포스터. 연예계에서는 CJ그룹의 영향력을 이길 곳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08년 '엠넷미디어'가 내건 이벤트 '오디션'의 포스터. 연예계에서는 CJ그룹의 영향력을 이길 곳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 탄생한 ‘엠넷미디어’는 국내 최대의 음반유통사로 등극했다.
김광수 씨는 ‘엠넷미디어’ 이사가 됐다.
‘엠넷미디어’는 연예기획사업부를 통해 김광수 씨가 매니징하던 연예인들을 대거 관리했다.
‘엠넷미디어’는 2010년 상반기를 끝으로 연예기획사업을 접었지만, 2009년 함께 일하던 백창주 씨가 ‘씨제스’를 차려 독립했다.
당시 ‘엠넷미디어’의 ‘황소개구리’ 같은 행보는 연예계에 큰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7개 음반제작사 및 연예기획사가 ‘대형 연예기획사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KMP홀딩스’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별명이 ‘엔초 페라리’인 CJ그룹 회장
CJ그룹은 이 같은 행보를 통해 ‘연예인’과 ‘미디어’, ‘유통’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CJ그룹 오너들이 이런 ‘영향력’을 즐기며 자신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점이다.

CJ그룹의 오너는 2명이다. 이재현 회장과 그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다.
이재현 회장은 식음료와 유통, 건설 등을 책임지고, 이미경 부회장은 미디어와 연예 분야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현 회장은 다양한 논란거리의 주인공이었다.
2005년 말에는 국내에 5대도 없다는 수퍼카 ‘엔초 페라리’를 정식 수입도 하기 전에 사들였다.
엔초 페라리는 페라리에서 내놓은 차 중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399대 한정으로 생산했다.
0-100㎞/h 도달 시간이 3.6초, 최대 속도가 350㎞/h에 달한다.
출시 당시에는 12억 원을 호가한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25억 원을 줘도 구하기 어렵다.
이재현 회장이 레이싱을 즐긴다는 사실도 이때 알려졌다.
이에 착안한 한 언론은 2006년 5월 ‘CJ 엔초페라리의 위험한 질주’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2004년 1월 34개던 계열사를 2006년 4월 104개까지 늘린, CJ그룹의 ‘무차별 인수합병’을 문제삼기도 했다.
‘엔초 페라리’보다 이재현 회장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바로 ‘비자금 조폭 동원’ 사건이다.
2007년 12월 경찰은 ‘CJ직원 한 명이 조폭에게 살인청부를 했다가 실패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8년 9월 서울지방경찰청은 “CJ그룹의 재무담당 부장인 이 모 씨가 투자 명목으로 회삿돈 180여억 원을 조폭 출신
박 모 씨에게 건넸다가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하자 다른 조폭을 동원해 2번이나 살해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이 모 씨는 박 씨가 ‘스크린 경마, 불법 사채, 재개발 등에 투자해 큰 이익을 얻게 해 주겠다’는 말을 믿고 거액을 맡겼다고 한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CJ그룹’은 “절대 회삿돈이 아니다. 공금을 횡령한 것”이라며 회사나 회장과의 연관성을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이 돈은 이재현 회장의 ‘개인 비자금’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경찰도 이재현 회장이 1987년 故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삼성화재 주식 9만여 주를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재현 회장은 CJ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되던 1993년부터 4년 동안 이 주식을 처분했고, 이 돈으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직원 명의의 주식계좌 90여 개를 통해 ‘CJ그룹’ 주식을 매입했다고 봤다.
좌파 매체 '프레시안'은 "이렇게 밝혀진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은 380억 원이 넘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금액은 살인청부를 했던 CJ그룹 직원 이 모 씨가 전직 조폭에게 돈을 맡겼던 2006년 5월부터 2007년 3월까지 나간 돈만 계산한 거다. 이 돈 중 170억 원은 명동 사채업자를 통해 마련했다고 한다.
150억 원은 차명 주식계좌에서 출금됐다고 알려졌다. 나머지 60억 원은 어디서 나온 돈인지 경찰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 돈 중 ‘전직 조폭’에게 떼인 돈만 100억 원 가량이라고 한다.
웃기는 건 ‘회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다 날린 이 모 씨는 구속됐지만, 정작 ‘비자금’의 주인으로 추정됐던 이재현 회장은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좌파 매체’ 다수와 ‘자칭 시민단체’들은 조용했다. 그 흔한 규탄 성명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미경 부회장의 '행동반경’도 만만지 않다. 연예계 관계자들과 담당 기자들은 이미경 부회장을 ‘여왕’이라고 부른다.
단적인 예가 이미경 부회장의 생일 파티다. 2011년 4월 8일 오후 9시 경 서울 상암동 CJ E&amp;M 센터에서 이미경 부회장의 생일파티가 열렸다.
이때 비, 이병헌, 정우성, 서인영, 김태우, 백지영 등과 YG엔터테인먼트 소속사 연예인 등 30명이 넘는 톱스타들이 참석했다.
이에 언론들은 “이미경 부회장이 연예인과 파티를 갖는 것은 단순히 비즈니스 차원이라기보다는 그가 스타들이 보여주는 재능과 활동 자체에 대한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파티에 참석한 스타들도 이 부회장을 업계의 큰 손이 아니라 ‘편한 누나, 언니’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한국판 메디치’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지금은 입대한 연예인 ‘비(본명 정지훈)’의 경우 자신의 콘서트에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 표시를 하기도 했다. 때문에 ‘여의도 찌라시’에서는 ‘스폰서십’에 대한 억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여론이 부담스러워 연예인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CJ그룹의 한 축인 ‘CJ E&amp;M’이 보여준 일행보는 가관이다.
2007년 6월 CJ E&amp;M의 전신인 ‘엠넷미디어’가 강남의 대형 나이트클럽을 인수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 언론들은 ‘재벌 기업인 엠넷미디어가 직원 명의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대형 나이트클럽 지분 10%를 70억 원에 인수하기 위해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유흥업계 종사자들은 “강남 최고의 나이트클럽 2곳을 합병해 ‘법인’을 만들었는데 엠넷미디어가 절반 가까운 지분을 취득했다가 여론의 질타에 못 이겨 매각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CJ미디어가 소유한 채널들의 선정적인 방송 내용을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CJ미디어 소속 케이블 채널들은 방송을 통해 ‘부비부비춤’을 그대로 방영하거나, 불륜 등 황당한 연애관계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방송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을 때다.

결국 ‘엠넷미디어’는 나이트클럽 지분을 매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가 지분을 인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CJ미디어와 직접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한 때 계열사처럼 있었던 ‘씨제스’도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바로 김태촌 씨의 ‘권상우 협박사건’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씨제스’ 대표인 백창주 씨를 구속한 바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백 씨는 양은이파 부두목의 아들이라는 점을 내세워 권상우 씨에게 ‘협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S파’ 조직원 출신은 아니었다.
당시 연예계에서 백 씨의 ‘파워’는 막강했다고 한다.
한 연예 전문 기자는 “백 씨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않는 게 연예언론에서는 불문율”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백 씨는 ‘씨제스’로 독립하기 전에는 ‘엠넷미디어’ 소속으로 활동했다. 때문에 인기그룹 ‘JYJ’의 팬들은 지금도 백 씨의 ‘배후’에 CJ그룹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011년에는 다른 '문제'로 또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CJ그룹이 오리온 그룹에게서 OCN, 슈퍼액션 등을 보유한 '온미디어'를 인수한 직후 오리온 그룹의 '비자금' 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이때 오리온 그룹 회장이 자식들 통학용 등을 핑계로 수퍼카를 여러 대 굴리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때 시중에서는 CJ그룹과 오리온 그룹 간의 '갈등설'이 나돌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오리온 비자금' 수사 당시  CJ E&amp;M 또한 '비자금' 관련 문제로 압수수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CJ E&amp;M 간부의 개인적 뇌물 수수' 사건으로 끝났다.

CJ그룹, 최종 목표는 ‘삼성 타도’?
이 같은 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CJ그룹을 ‘공격’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막강한 광고주라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일각에서는 좌파 진영과의 커넥션을 주장하기도 한다.
한 전직 언론인은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동문 선배인 A씨가 좌파 인터넷 매체를 설립할 때 초기자금으로 5억 원을 대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확인이 안되고 있지만, DJ-노무현 정부 시절 CJ그룹이 좌파언론과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것은 분명하다.
CJ그룹은 아름다운 재단이나 희망제작소와도 여러 작업을 해왔다.
2010년 6.2 지방선거 후 송영길 인천시장이 당선된 뒤 CJ그룹의 ‘굴업도 개발’에 대해 환경단체들이 반발이 있기도 했지만,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아직 실현 여부가 미정인 ‘굴업도 사업’에는 이재현 회장의 개인 자금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대체 ‘CJ그룹’은 왜 이렇게 상식 밖의 일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일까. 일부 호사가들은 ‘삼성그룹의 장자 지위를 찾으려는 데 마음이 급해 그러는게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한다.
CJ그룹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부친은 故이맹희 씨다. 2002년 별세한 故이맹희 씨는 故이병철 회장의 맏아들이다. 이재현 회장은 삼성가의 장손인 것이다. 실제 1987년 故이병철 회장의 장례식 때 이재현 회장이 영정을 들었다.
이 같은 장손가문임에도 늘 삼성그룹에 밀렸다.
삼성그룹의 모태 중 하나인 ‘제일제당’을 물려받았지만 사람들은 CJ그룹이 故이병철 회장의 ‘적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 또한 CJ그룹과 협력하는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CJ그룹과 삼성SDS 컨소시엄이 치열하게 벌였던 '대한통운 인수전'이었다.
이런 점이 한(恨)이 된 걸까.
2011년 7월 19일에는 서울 중구 쌍림동에 있는 ‘CJ센터’ 1층에 故이병철 회장의 홀로그램 흉상을 세우기도 했다.
같은 해 말부터는 CJ그룹의 CF와 마케팅에서 ‘제일제당’과 故이병철 회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놓고 ‘삼성그룹에 대한 정면 도전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자산총액 13조 원, 공기업까지 포함했을 때 23위라는 재벌 CJ그룹. 그동안 여러차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CJ그룹이 이번 빵집 파문에서 어떤 입장을 보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권승식 김광수





비록 흑역사를 쓰고있지만 권승식씨와 김광수씨는 이런 리즈시절이 있었다.

터보, 이효리가 아직도 회자되는 뒷편에 이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터보는 폭력으로 이효리는 표절로 얼룩졌지

연예계 "뭉치고 키워야 산다"

2000 03/30(목) 00:20
합종연횡 통한 대형화 바람, 벤처산업 진출도 본격화

“헤쳐 모여.”

연예계가 정신없이 변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연예계를 강타하고 있다. 바로 합종연횡을 통한 대형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것.

20여명의 톱스타가 뭉쳐 대형 매니지먼트회사를 만드는가 하면 규모를 늘리고 그 세를 바탕으로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는 프로덕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유망 벤처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맺은 레코드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는 한 연예계 인사의 말에서 변화의 바람을 실감할 수 있다.

갑작스런 대형화 태풍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또 어디로,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합병바람

신년 벽두의 연예계에 불어닥친 합병 바람의 원조는 ‘KS미디어’다. 바로 조성모, M-차일드를 소속한 GM뮤직과 터보, 포지션을 키워낸 스타뮤직이 그들이다. 이들의 합병 소식은 가요계를 강타했다. 국내 음반업계에서 수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스타뮤직과 GM뮤직의 합병은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국내 가요 프로덕션이 각자 자기만의 영역에 대한 배타의식이 강했던 터라 함께 일한다는 새로운 의식의 태동이라는 의미도 있다. “‘뭉친다’는 말이 생소한 가요계에 합병 얘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죠.

하지만 우리도 뭉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흐름이예요. 21세기는 대충 정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와는 다를 것이란 생각입니다.” 스타뮤직의 권승식 사장과 GM뮤직의 김광수 사장의 이구동성이다. KS미디어는 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계기로 건전한 기업마인드를 도입하여 21세기 문화산업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KS미디어의 태동은 ‘헤쳐 모여’를 폭발시켰다. 엄정화, 이동건을 소속하고 있는 누리기획(대표 한석창)과 박남정, 미스터 투, 송대관을 길러낸 대하기획(대표 장의식)도 ‘J&C미디어’로 합병을 선언했다. J&C미디어는 여기에 그치지않고 신승훈을 소속하고 있는 오즈기획(대표 이규덕)을 끌어들여 명문 프로덕션 구축에 나섰다.

3월22일은 연예계 변화의 의미있는 날로 인식된다. 톱스타 20여명이 소속된 국내 최대 연예 매니지먼트회사가 탄생했고 또 굴지의 도레미레코드사(대표 박남성)는 유망 벤처기업인 나눔기술(대표 장영승)과 두인전자(대표 김광수)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었다.

또 최수종 차인표 유인촌 이정길 박상원 등 중견 스타들이 인터넷 방송국 씨엔지티비닷컴의 주주로 참여했다. 이들은 각기 활동을 하면서도 공동체 의식을 영유할 계획이다.


벤처기업 로커스와 영화사 우노필름, 그리고 매니지먼트회사 EBM이 만든 ‘싸이더스’(SIDUS·라틴어로 별이라는 뜻)는 소속된 연예 스타의 이름만으로도 거대 군함을 연상시킨다. 김혜수 전도연 정우성 장혁 전지현 박신양 한재석 최지우 손창민 차태현 설경구 남희석 이휘재 유지석 윤해영 등 굴직한 스타들이 한가족으로 뭉쳐 예전에 없던 대형화가 완성됐다.

출범 첫해인 올해 매출 400억원, 순이익 6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자신하는 싸이더스측은 앞으로 영상산업, 음반산업, 매니지먼트 등 대중문화 전반에 손을 댈 계획이다.

도레미레코드, 나눔기술, 두인전자의 제휴는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스타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 능력과 잠재력은 어느 회사보다 크다.

현재 국내 최대 음반사로 많은 음원을 확보하고 있는 도레미레코드, 음악 컨텐츠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나눔과 두인의 제휴는 음악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음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휴는 도레미레코드사의 지분을 나눔기술이 40%, 두인전자가 20%를 매입해 이루어졌다.


코스닥 열풍

대형화의 종착역은 코스닥 시장에 있다. 연예 종사자들끼리의 합병이 일반 대중과의 합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스닥 등록은 투자자를 모집해 대형 엔터테인먼트회사를 만들고 연예산업의 기둥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물론 코스닥 열풍에 편승, 한몫 잡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욕심도 작용하고 있다.

예상을 했지만 H.O.T, S.E.S, 신화 등의 SM기획(디표 이수만)과 핑클 젝스키스 박진영 박지윤 등의 대영기획(대표 유재학)이 코스닥 등록 심사를 통과해 4월초부터 정식으로 거래될 예정이다. 연예산업을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던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SM기획과 대영기획의 성공여부는 연예 산업의 코스닥 붐을 주도할 전망이다. 투자자가 영양가있는 주식이라고 판단했을 때 연예계는 자본집약형 산업으로 급격한 발전이 예상된다. SM기획과 대영기획의 뒤를 이어 도레미레코드(대표 박남성) 예당음향(대표 변대윤) DSP(대표 이호연) J&C(공동대표 장의식, 한석창) 등이 코스닥 등록을 서두르고 있다.


변화는 시대의 요청

연예계의 대형화의 필요성은 IMF 이후 줄곧 제기되어온 문제. 시간이 문제일뿐 언젠가는 불어닥칠 흐름이었다. 영세한 국내 연예계는 IMF의 폭탄세례에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설상가상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 소식은 목을 죄는 일이었다.

실제 250여개가 넘던 가요 프로덕션은 IMF가 찾아오면서 180여개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몇몇 히트 제작사외에는 간판만 걸어놓았다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빚을 이기지 못해 해외로 도주하는 제작자도 늘어났다.

‘뭉치고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는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살아야한다는 단순한 생각이 연예계의 변화 바람을 주도했다는 평가다.


변화의 문제점

대형화는 어차피 자본 종속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프로덕션 사장은 더 큰 규모의 대형 프로덕션의 입김 하에 들어갈 위기에 놓였다. 결국 운영자에서 직장인으로 강등되는 상황이다.

과학적인 논리보다 의리와 정으로 통하던 연예계는 당연히 선후배 관계가 무너지게 되고 능력에 의해 평가받는 사회로 돌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역시 부익부 빈익빈, 즉 상대적인 발탁감에 시달리는 종사자들이 늘어나는 문제를 낳게 된다.

변화가 너무 빠르다는 점도 우려된다. 아직 우리 연예계는 초스피드 변화를 감당하기에는 성숙함이 덜하다.

또 앞을 내다보지 않고 머리부터 들이박는 쏠림현상은 가장 큰 문제. 앞뒤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코스닥행은 하나가 망하면 전체가 망하는 현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만약 대영기획이나 SM기획이 코스닥 시장에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연예계에 등을 돌릴 것에 틀림없다. 그런 상황이 되면 가뜩이나 자본 부족에 시달리는 연예계는 희망에서 절망으로 빠져들 것이 불보듯 뻔하다.

정교민 ·일간스포츠 연예부 기자 gmjung@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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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기획-마케팅의 귀재 GM김광수 대표


8할대 타율. 야구 얘기 물론 아니다. 음반 얘기다. 음반 10장을 만들었을 때 8장을 성공시켰다는 얘기다. 그 놀라운 '타율'의 주인공은 바로 'GM Production' 김광수 대표다. '홍보 마케팅의 귀재'로 불리지만 그의 성공비결은 의외로 평범했다.
"'명성황후' 뮤직비디오 보셨어요? 어땠어요?" 인터뷰 스케줄을 잡기 위해 오랜만에 통화했을 때 인터뷰 날짜 때문에 실랑이를 하던 와중에 김광수 사장이 대뜸 꺼낸 질문이다. 인터뷰 날짜를 확정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도 그는 어김없이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명성황후' 뮤직비디오 느낌이 어땠어요?" 요즘 그의 머리 속은 온통 '명성황후'로 꽉 차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이것만 생각해요. '명성황후' 준비하고 지금까지 제 삶 자체가 명성황후가 되지 않으면 음반을 만들 수 없어요. 이미연은 어떤 표정이 예쁘고 어떤 대사 했을 때 슬프고 뭐 이런 게 철저하게 분석되지 않으면 이런 뮤직비디오 만들어질 수가 없어요. 조성모랑 헤어지기 한 달 전에도 이런 얘길 했어요.

'내가 살아온 3년 동안은 내 삶 자체가 조성모였다'고. 그 정도로 눈 떠서 잘 때까지 거기에 대해서 완벽하게 분석이 안 되면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거죠."

-그래도 '명성황후' 때문에 한창 바쁜 건 좀 지났죠?

"이젠 [연가 2] 만들어야죠. 2월 중순에 5장짜리로 나와요."

-(허걱)또 돈을 긁어 모으시겠네요?

"사람들은 왜 자꾸 돈 얘길 하는지 원. 돈벌려고 하면 돈 못 벌어요.(웃음) 돈벌려고 했으면 '명성황후' 만드는 데 11억원이나 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O.S.T 몇 장 나간다고 그렇게 만드냐고. 비록 히트가 안되더라도 '저런 음반도 만들어질 수 있구나' '드라마 음악도 뮤직비디오를 만들 수 있구나' 'O.S.T 음반도 잘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결과에 어느 정도 만족하시나요?

"처음부터 100만 장 나가는 음반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현재 1단계 홍보는 끝난 상탠데 계획대로 된 거 같아요. 100만 장까지 나가려면 홍보전략이 3단계까지 있어야 하는데 1월 중순부터 2단계 홍보에 들어가고 그 이후 3단계가 진행되죠. 자신 있어요."

-어떤 전략인지 궁금하네요.

"난 전략을 굳이 숨기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이 내 아이디어로 얼마든지 만들어도 좋아요. 다만, 내 머리 속에 있는 구체적 컨셉트는 나만 가지고 있는 거니까 자신만만해요. [동감] O.S.T도 내가 기획한 건데 다른 사람이 내 아이디어로 잘되면 좋은 거죠.

아이디어는 어떤 일에든 몰입하면 다 생겨요. 요즘 음반 내면서 '시기가 연말이라 걱정된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시기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오는 거예요. 특별히 음반 내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될 건 다 돼요. 결국 완성도가 문제죠."

'기회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온다'

김광수. 41살의 미혼. 매니저 경력 17년. 인순이, 김완선의 매니저를 거쳐 1987년 처음 김종찬을 시작으로 김민우, 윤상, 노영심, 구본승의 음반, '파일럿'을 비롯한 수많은 드라마 음반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눈부신 성공신화를 일구어온 음반제작자.

"나 웃으면 느끼한데." 어색해 하면서도 사진 찍는 자세가 무척 자연스럽다. 그 역시 연예인의 끼가 흐르고 있어서일까. 그가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쇼 프로 [젊음의 행진]의 마스코트 '짝꿍'(대학생들로 구성된 전문 댄싱&코러스팀) 1기 출신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

-어릴 적 꿈은?

"특별히 꿈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땐 운전사가 되고 싶었어요. 버스 타고 통학했는데 운전사 아저씨가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짝꿍' 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죠."

-춤추는 거 좋아하셨나 봐요.

"좋아했죠. 그때가 1981년 말 82년 초였는데 '대학생 댄스경연대회' 같은 데도 많이 나갔죠. 상도 받았고.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도 만들었어요. 83년 말엔 춤추고 노래하고 연주하는 팀, 지금으로 말하면 '클릭 비' 같은 팀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주노, 신철, 전원석, 이승호 등과 함께 '주사위'란 팀도 만들었어요. 그러다 주위에서 '넌 이것저것 생각이 많은 거 보니까 매니저 하면 잘하겠다' 권유해서 하게 됐어요."

-매니저 초창기 시절, 어땠어요?

"그저 열심히 했죠 뭐. PD들이 편집할 때 옆에서 계속 같이 있고. 매니저들 보통 야외 녹화 끝나면 PD한테 인사하고 가잖아요. 전 밤에 꼭 편집실 가서 편집하는 거 보고 슬픈 장면 나오면 우리 가수 음악 좀 BG(배경음악)로 넣어 달라고 하기도 했죠.(웃음)"

-매니저 입문 3년도 안돼 제작자가 됐는데, 신인 보는 안목이 남다른 거 같아요.

"빠른 편이죠. 그냥 했어요. 열심히 한다는 생각으로. 저 안목 좋은 편 아니에요. 제가 직접 발굴한 케이스는 거의 없고 다 추천받아서 하게 됐죠. 김종찬, 김민우, 윤상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받았어요. "

-소개받았다고 다 제작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사실, 조성모의 경우도 초창기 댄스 그룹 보컬 시절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신인 처음 봤을 때 처음부터 '뻑 가는' 경우는 없어요. 다 하다 보면 '때깔'이라는 게 나는 거지. 그래도 가수는 기본적으로 노래는 좀 해야겠죠. 근데 윤상의 경우, 가창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는데 목소리가 참 슬프고 감정처리를 잘 하더라고요. 조성모의 경우는 정말 적극적이었어요. 보통 오디션 보러 오면 주뼛주뼛대는데 이 친구는 이것도 할 수 있다 저것도 할 수 있다며 매사에 적극적이었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너 정말 열심히 한다. 넌 정말 잘 될 거 같다'."

뛰어난 연예인 없이 뛰어난 매니저 없다
김광수의 조성모 띄우기 전략은 여러모로 음반 홍보 마케팅, 스타 매니지먼트 전략의 '표본'이 되었을 정도다.
초기엔 철저히 신비주의 마케팅 전법으로 가수를 전면에 등장시키지 않고 오로지 '톱스타들이 등장하는 아주 인상적인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후 '출발 드림팀'을 통해 '건강하고 해맑은 청년 조성모'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드라마 O.S.T 들을 때 그 음악이 깔린 영상을 떠올리잖아요. CF도 콘티에 의한 일종의 짧은 드라마예요. 그런 거 보면서 '짧은 드라마를 만들자' 생각했죠. 톱스타들이 등장해야 방송도 탈 수 있고 화제도 되니까 그렇게 했고요. 전 그래요. 외국 잡지, 외국 드라마 참 많이 보거든요. 좋은 장면 있으면 응용하고 로고체, 색감 등을 참고로 해요. '모방 속의 창조'라고 할까."

-'드라마 형식의 뮤비'는 그때까지 없었던 참신한 시도였지만 지금은 우후죽순 너무 많아 식상해졌다고 할까. 이 정도 음반 시장 규모에서 음반 제작비를 훨씬 초과하는 뮤비의 물량 공세는 이젠 좀 탈피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시대가 변해가고 있어요. 듣는 음악시대가 아니라 보는 음악시대로. 어떤 시도가 성공했을 때 유행처럼 번지는 건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 아니겠어요. 이제 드라마타이즈 탈피해야죠. 하지만 이런 측면도 있어요. 코믹 영화라도 다 같은 건 아니잖아요. 어떤 소재로 하느냐가 중요하죠. 꼭 찍고 싶은 소재가 있어요. 여름에 댄스곡으로 [슬램 덩크] 같은 농구 얘기로 뮤비를 만들고 싶어요. 시원하게."

-'홍보 마케팅의 귀재'로 불리는데.

"음... 홍보 마케팅을 아무리 잘해도 완성도가 떨어지면 대중들은 단번에 알아요. 밀리언 셀러가 되려면 마케팅 전략과 좋은 구성, 완성도가 다 잘 맞아 떨어져야 돼요. '매니저 잘 만나서 스타 되고 히트 된다? 이건 있을 수 없다고 봐요. 좋은 매니저는 좋은 가수, 연기자들을 좀 더 빨리 알려지게끔 하는 거죠."
차가운 승부사의 기질, 물론 그에게도 있다.

"떠난 연예인 한 번도 잡아본 적 없어요. 그 친구가 암만 몇 백억짜리 몸값이 되더라도 난 잡지 않아요. 난 또 열심히 하면 연예인 만들 수 있으니까. 한결같이 열심히 하면 톱스타 나올 수 있는 거니까. 조성모랑 헤어진 뒤에는 조성모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어요. 떠난 연예인 돌아보고 생각할 여력, 시간이 내겐 없어요. 그래서 차갑다는 얘기도 듣죠. 결혼 안 해봤지만 '품안에 있을 때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래도 단 한 번도 내가 먼저 나가라고 한 적 없어요."

-정말인가요? 혹시 스스로 나가게끔 하는 상황을 만드신 건 아니구요?(웃음)

"난 연예인들에게 너무 잘 해줘서 문제예요.(웃음) 정말 가족같이 지내요. 사장의 위엄 그런 거 없었어요. 같이 밥 먹고 같이 놀러 가고. 어디든 항상 돈 문제가 있는데 그런 거 없었어요. 다들 스스로 하고 싶어해서 나간 거지 돈 때문에 나간 거 아녜요. 떠난 친구들 다시 받아줘 본 적도 없어요. 딱 헤어진 그 날부터는 그 친구가 내 소속 연예인 라이벌이라고 생각해서 잘 만나지도 않아요."

-가장 힘들 땐 언제였나요?

"1995년 1월 'PD 사건' 나고 3년간이요. 사람들은 제가 엄청난 로비스트인 줄 알고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저랑 친한 PD들 다 무혐의로 풀려났어요. 그때 사람들이 그랬죠. '김광수 시대는 드디어 갔다.' 고소해 하는 사람도 많았을 거예요. 3년간 너무 슬펐어요. 내가 너무 독선적으로 살았구나, 생각 많이 했죠. 얼마나 방송이 하고 싶었는지 3년간 사무실 없애지 않고 매일 출근하면서 하는 일 없이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소, 돼지의 생활이 이런 거구나 했죠. 그러다 이의정을 다시 하게 되고 그 친구가 막 뜨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그 사이 조성모를 준비할 수 있었죠."

"1년 후 일선 매니저로 돌아갈 것... 후배들의 '표본' 됐으면"
항상 머리 속에 그 다음 단계, 다음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김광수 대표. 그의 GM Production은 내년 3월 큰 변화를 맞는다.

'스타뮤직' 'KS미디어'(대표 권승식)와 정식으로 합병,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GM Production'을 출범시킨다.
강남에 있는 신축 사옥도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물론, 코스닥 등록도 차근차근 진행중이다.

"대표는 권승식 사장이 맡고 전 이사예요. 사장 역할 한 1년만 더 하고 평범한 매니저로 돌아갈 거예요. 열심히 일하는 매니저로 남고 싶지 대표로 남고 싶지 않아요. '매니저는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저게 진짜 매니저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느끼게 하는 표본이 되고 싶어요."

-꿈이 있다면?

"꿈 없어요. 그저 계속 열심히 일하고 싶고 계속 히트 음반 만들고 싶고 후배들에게 존경 받는 선배이고 싶어요. 앞으로 좋은 드라마,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시트콤도 준비 중이고요. 대한민국에서 최고 가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만들고 싶어요."

꿈이 없다더니 꽤 원대한 포부를 펼쳐 놓는다. 따로 취미도 없고 매니저 생활 17년간 연예계 밖 친구를 만난 적도 없다는 김광수 대표. 그 생활이 조금은 삭막해 보이지만 일이 늘 재미있고 너무 바빠 외로울 틈조차 없단다. 결혼도 2년 후로 미뤄 놓은 그의 '원대한 포부'가 허허롭게 들리지 않는다

- weekly entertainer -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숨만 쉬어도 성희롱


야 이년들아 ㅠㅠ



2013년 11월 8일 금요일

김보성 했던 사업



그놈의 으리 ㅋㅋㅋ

2013년 11월 4일 월요일

Korean Actress 유인나 성형전 Yoo In na before and after plastic surgery



1982년 6월 5일 일생

내정초등학교
내정중학교
수내고등학교
경원전문대학 비서학과

2013년 11월 2일 토요일

Miss universe 2013 Korea represent Kim Yumi 김유미 plastic surgery Controversy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세상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OMG lol